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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철로는 바로 노량진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운송수단으로서 말, 혹은 사람의 두 다리가 전부였는데요.


철도가 개통됐던 1899년 9월 18일.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라는 새로운 운송수단을 구경하기 위해 인천역 앞에 모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천역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요?



우리나라 개항 이후, 조선에 진출한 열강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철도 부설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교통시설이 부실했던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철도가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열강뿐 조선에서도 철도 부설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주재 한국대리공사로 근무했던 '이하영'이라는 사람입니다.


당시 조선은 철도를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철도는 이해하기 힘든 교통수단이었으며, 비용 또한 만만치 않으니 모험을 감행하며 조선 땅에 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하영은 철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계속해서 피력했으며, 마침내 고종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조선이 주도하는 철도 부설이 시작됐는데요.


자본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조선의 자주적인 철도 부설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어 일본의 손에 넘겨졌지만,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조선 내에서 반일감정이 거세어지자 일본은 경인선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마침내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사업가 '모스'가 경인선 부설권을 넘겨받았으나, 공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금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또다시 경인선의 부설권은 일본의 손으로 돌아가 완성됐습니다.


조선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일제에 의한 침탈이라는 우리의 아픔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이 철도 부설권을 노리기 이전에 우리도 자주적으로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철도가 달리는 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오래전 선각자들을 마음속에 새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품었던 새로운 조선에 대한 열정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역 1호선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69